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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뻐나의 네팔 통신

써빙프렌즈 2014. 7. 21. 16:55


메로 쁘렘(나의 사랑) 네팔

2009년에 네팔에 2주 동안 여행을 한 뒤로 저는 네팔과 사랑에 빠졌어요. 그냥 네팔이 좋았어요. 네팔에 남자나 금을 숨겨 둔 것도 아니었는데, 네팔에 다시 가야 한다면서 아주 노래를 부르고 다녔어요. 그 후로 3년이란 시간이 흘러서야 네팔에 다시 올 수 있었어요. 하지만 아무런 목적이 없이 오고 싶지는 않았어요. 네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지요. 대학 때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한국어 교사로 네팔에 오는 것이 가장 적절할 거란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한국어 교사 양성 과정을 듣고 그 어렵다는 한국어 교사 자격증을 땄어요(은근히 자랑?). 한국어 교사로 온다 해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어요. 코이카로 올 수도 있고, 선교 단체의 파송을 받고 올 수도 있어요. 그리고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에 속해 있는 NGO로 올 수도 있어요. 파송 방법에 따라 사역이나 지원 방법이 달라져요


개인적으로 써빙프렌즈 네팔 지부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준비한 것들이 잘 쓰일 수 있을 거라 확신하고, 민간 NGO인 써빙프렌즈의 단원으로서 이곳에 오게 됐어요.





아시아 3대 빈국 네팔. 네팔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네팔의 모든 사람이 찢어지게 가난할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모든 사람이 다 가난한 건 아니에요. 부자들도 있어요. 이들은 대대로 부자였고 무역이나 상업에 종사하면서 부를 축척해 나가지요.


네팔 사람은 부자이지만 나라는 가난해요. 그래서 공산품에 세금을 많이 매길 수밖에 없어요. 공산품이 모두 수입품이어서 야채나 과일을 제외하고는 체감 물가가 한국보다 약간 싼 정도예요. 카트만두는 네팔 부자나 외국인들이 살 만한 곳이에요.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이 물가는 버거운 것이지요. 그리고 개발이 안 된 네팔 극서부에는 긴급 구호가 필요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써빙프렌즈 네팔 지부에는 다양한 일을 해요. 놀고 있는 청년들이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컴퓨터와 언어 학원을 운영하고 있고, 오갈 데 없는 할머니들을 돌보는 양로원을 운영하고 있어요. 그리고 껀쩐뿔과 버이떠리 지역에 HIV/AIDS 아동 결연을 하고 있어요


네팔의 심각한 사회 문제 가운데 하나가 네팔 안에서 직업을 구하기 어렵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은 자꾸만 외국으로 나가려고 해요. 우리가 담당하고 있는 극서부 지역의 아이들이 왜 HIV에 감염되는지 아세요? 아버지들이 돈을 벌 데가 없어서 인도로 나갔다가 HIV에 감염돼서 오고 그것이 엄마와 아이에게 전염되는 거예요. 병에 걸려 있기 때문에 학교에 가거나 생활을 하기가 어렵고 이 아동은 돈을 벌기 위해 다시 인도에 갈 수밖에 없어요. 할 줄 알고 아는 게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가난은 대물림 되고 있어요. 게다가 네팔에는 카스트 문화가 뿌리내려져 있기 때문에 이 가난에서 벗어나기가 아주 어려워요. 



네팔에서 대학까지 나왔어도 직장을 구하고 돈을 벌기가 어려워서 사람들은 한국, 싱가포르, 쿠웨이트, 인도 등 다양한 나라로 돈을 벌러 나가요. 제가 담당하고 있는 한국어 수업의 한 학생은 바리스타로 일하는데 주 6, 하루 8시간을 일하고 한 달에 10,000루피(120,000)를 번다고 해요. 또 다른 학생은 야간 보안 업무를 하고 한 달에 14,000루피(160,000)를 번다고 해요. 집세 내고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하기에도 빠듯한 돈이어서 꼭 한국에 가서 돈을 벌고 싶다고 해요.


노동자로 한국에 가려면 한국어 시험을 통과해야 해요. EPS-TOPIK1년에 한 번 있는 시험으로(이 시험이 없는 해도 있어요), 듣기와 읽기로 구성돼 있어요. 예전에는 운전면허증처럼 문제와 답만 외우면 됐지만, 이제는 말을 할 줄 모르면 시험 문제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워졌어요. 상사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일을 잘못하는 바람에 상사에게 맞은 네팔 노동자에 대한 기사가 4월경에 네팔 신문에 나왔어요. EPS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1차 목표이지만, 저는 한국어를 가르칠 때 회화도 가능하도록 가르쳐요. 교재는 EPS 센터에서 나오고 네팔어 번역이 돼 있는 EPS 한국어 표준 교재와 EPS 예상 문제집을 사용해요.


2014EPS-TOPIK 시험이 8월로 확정되었어요. 아직 진도가 많이 남아서 제 마음이 몹시 다급해졌어요. EPS 한국어는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한국어여서 어려운 문법이나 단어가 나오거든요.





기존에 써빙프렌즈에서 파견했던 단원은 영어를 가르쳤기 때문에 제가 파견된 작년(2013)에 처음 EPS 대비반이 생겼어요. 각종 한국어 교재를 준비해 왔지만, EPS 한국어를 처음 접해 본 저는 완전 병아리 선생님이었어요. 


4월 처음 개강했을 때는 한 명만 두고 수업을 했지요. 그런데 이제는 아침 6시, 7시 반, 오후 4시, 5시 반 모두 네 반이 있고 하루에 6시간씩 강의를 해요. 학생도 총 50여 명 정도 돼요.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네팔어도 같이 늘어서 한국어 문법을 네팔어로 더듬더듬 설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어요.


올해는 2년째라 나름 가르치는 노하우를 쌓고 있는데, 그 중 한 가지는 한글을 나중에 가르치는 거예요. 교재에 네팔어 번역이 나와 있기 때문에 문장을 통째로 외우게 해요. 그리고 한국어의 발음 원리에 따라 한국어 발음을 네팔어 스펠링으로 써 줘요. 


저는 네팔어 단어를 정확하게 쓰지 못해요. 하지만 한국어 단어의 발음을 네팔어로 쓸 수는 있어요. 일단 회화가 되면 EPS 시험은 어렵지 않게 붙을 수 있어요. 하지만 학생들은 매일 나오는 엄청난 양의 한국어 단어와 문장을 암기해야 해요.


그래서 저는 매일 “껀타 거르누호스(외우세요)!!”를 외칩니다.



시험일이 다가옴에 따라 학생들의 불평도 늘고 있어요. 두 달 만에 50과를 다 떼 달라고 한다든지, 문제에 나오는 것만 공부하고 싶다든지, 한글을 먼저 가르쳐 달라고 요구해요. 그럴 때마다 저는 그냥 저를 믿고 따라 오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저야 당연히 모든 사람이 합격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최선을 다하지요. 


하지만 제 마음을 몰라 주더라고요. 언어를 공부하는 데는 재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요즘이에요.




네팔 사람들이 만날 저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결혼을 언제 할 거니? 네팔 남자랑 결혼하는 건 어떠니? 내가 좋은 남자 소개해 줄까?” 그러면 저는 고맙지만 됐다고 말해요. 힌두 문화권에서 여자가 그렇게 존중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모든 네팔 남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네팔에 가부장적인 문화가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어요.


다른 NGO 단체들이 하지 않고 있는 사역 가운데 하나는 양로원을 운영하는 것이에요. 보통 NGO에서는 좋은 결과를 얻어 낼 수 있는 프로젝트 사업을 진행해요. 하지만 양로원 사역은 돈이 들어가기만 하는 일이지요. 써빙프렌즈에서 운영하는 이 양로원의 이름을 ‘안나의 집’이에요. 여기에 오갈 데 없는 할머니들을 엄선(?)하여 모시고 있어요. 가족이 있고 돈이 있는데 이곳에 오는 할머니들이 있을까 봐 할머니에 대해 조사를 하고 이곳에 모셔 오게 돼요. 현재 스텝까지 열두 분이 계세요. 앞으로 총 서른 분 정도를 모실 예정이에요. 


사실 네팔 노인 인구가 266만 명인 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지만, 이 사업을 하는 데는 큰 의미가 있어요.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해 드리고 싶어요. 그 할머니는 여덟 살 때 가정의 사정으로 인해서 시집을 가게 됐어요. 하지만 남편이 그 다음 날 도망가 버리고 말았어요. 할머니는 평생 혼자 외롭게 사시다 안나의 집에 오게 됐어요. 정부에 과부로 등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원금도 받을 수 없어요. 때때로 책을 읽고 청소를 잘하시지만 허리가 많이 아프시다고 해요.


또 다른 할머니의 이야기를 해 드릴게요. 그냥 한눈에도 예쁘셔서 저는 항상 이분을 ‘라므리 허줄아마(예쁜 할머니)’라고 불러요. 단기 봉사 팀이 안나의 집에 왔을 때 한국 전통 부채를 각 할머니께 선물했는데, 이 라므리 허줄아마가 부채를 하나 품에 넣고 또 부채를 받으시더래요. 이 할머니는 남편이 매일 다른 여자를 집에 데려왔대요. 항상 자기 것을 빼앗기며 살아온 거예요. 그래서 자기 것이 생기면 챙기려고 하는 거지요. 남편과 자녀 몇몇은 죽었고, 문맹이어서 책을 읽지 못하세요.



안나의 집을 운영하는 것은 비록 소수의 할머니들께 식사를 드리고 안전하게 쉴 곳을 제공하는 일이지만, 평생을 버림받고 소외 당한 이 할머니들이 자신도 사랑 받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해 드리는 귀한 일이에요.




네팔에 오고 나서 한 달간은 이곳에 적응하는 데 많은 힘을 쏟아야 했어요. 더럽고 먼지 날리는 도로, 깨끗하지 않고 충분하지 않은 물, 여기저기 널려 있는 개와 사람(?)의 큰 것, 오토바이나 차가 지나가면서 빵빵거리는 소리. 외국인에 대한 바가지.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니 이것도 적응이 되더라고요. 이곳에 도움을 주러 왔지만, 네팔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배우는 것도 많이 있어요. 네팔에서밖에 먹을 수 없는 더히(요거트)나 망고도 마음껏 먹고 네팔 의상인 꾸르타를 좋아해서 항상 입고 다녀요. 아무리 네팔 땅에서 네팔 음식을 먹고 네팔 옷을 입어도 저는 이곳에서 이방인이지요. 하지만 제가 여기 있어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써빙프렌즈 네팔 지부에는 다양한 인력이 필요합니다. 우선 학원에서 필요한 컴퓨터 프로그램과 디자인 선생님, 영어나 한국어 선생님, 양로원이나 HIV/AIDS 아동 결연 담당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어요. 제가 담당한 일은 한국어 교육과 양로원이고 그나마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도 소수이지만, 언젠가 제가 하는 일들이 네팔에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해 봅니다


오세요, 네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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