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빙프렌즈 공식 블로그

탄자니아의 하늘, 나무, 그리고 사람 본문

써빙프렌즈/People_써빙프렌즈 사람들

탄자니아의 하늘, 나무, 그리고 사람

써빙프렌즈 2014. 5. 13. 16:13





 스무 살 무렵에는 더 큰 세상으로 경험하고 싶은 마음에 배낭여행, 단기 자원봉사, 어학연수 등을 통해 유럽, 중동, 이집트,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북아메리카 등 많은 곳을 누볐습니다. 하지만 어느덧 세상적인 성공만을 바라보며 소위 스펙 쌓기와 취업, 그리고 승진에만 집중하며 달려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써빙프렌즈 해외봉사단 공고를 마감 이틀 전에 보게 되었고, 미처 마음의 결정을 채 다하기도 전에 머리보다는 마음에 이끌려 자유와 미지의 땅, 아프리카로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아프리카로 해외 봉사를 간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였습니다.

 지금 한창 중요한 시기에 승진도 하고 결혼도 해야 되는데 갑자기 무슨 아프리카냐’, ‘이제는 네가 하고 싶은 것 보다는 해야 되는걸 할 나이이지 않느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도 간혹 정말 좋은 결정이라며, 멋진 경험하고 오라며 응원해 주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 이 결정은 쉽지도 않았지만, 결코 어렵지도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주입식 교육으로 수동적인 사고에 익숙한 머리가 시키는 대로 살아왔다면, 이제는 뜨거운 심장과 마음이 이끄는 대로, 무엇보다 가슴 뛰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곳으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314일 화이트데이에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검고 붉은 대륙 아프리카 땅으로 향했습니다. 기대, 두려움, 설렘 등 복합적인 심정으로 케냐를 경유하여 16시간 만에 낯선 탄자니아 아루샤 땅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탄자니아의 첫 느낌은 끝없이 뻗은 대륙과 너무나도 파란 하늘, 그리고 어디를 둘러봐도 검은 피부와 하얀 이빨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많은 현지인들이 라피키 라피키 (rafiki,친구) 하며 다가왔고, 저는 수많은 현지인들 사이에서 이동선 지부장님과 임마(Emanuel, 현지 직원)의 안내를 받아 써빙프렌즈 탄자니아 지부에 도착하여 가슴 벅찬 환영을 받았습니다.


 시차적응을 하기도 전에, 이틀 뒤 모로고로(Morogoro) 언어학교로 떠나야 했습니다. 써빙프렌즈 탄자니아 지부가 있는 아루샤에서 모로고로는 버스로 10시간 정도 시간이 걸리고 중간에 휴게소에서 쉬는 시간은 단 10, 그것도 딱 한번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정말 눈 앞이 깜깜했습니다. 지금에서야 인사말과 생존을 위한 약간(?)의 스와힐리어를 하지만, 그때만 해도 언어교육을 한다는 말만 믿고 아무 준비도 없이 왔던 것이 어찌나 후회되고 두려웠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그 때의 10시간이 있었기에 현지인들에 대한 낯설음을 떨쳐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탄자니아에는 ‘비는 축복이다(mvua ni baraka)’라는 말이 있습니다. 탄자니아의 하늘은 수 많은 구름과 강한 햇살, 그리고 드넓은 시야가 어우러져 매일 밤낮으로 멋진 장관을 연출해 내지만 3월부터 6월의 우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간에는 타는듯한 목마름의 붉은 아프리카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나마 우기에는 대부분 밤에 비가 내리고 낮에는 맑은 기후가 유지되기 때문에, 탄자니아의 농부들은 짧은 우기 때 부지런히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현지 친구가 제 이름의 의미를 묻고는 바라카(Baraka, 축복)라고 스와힐리어 이름을 지어주었고, 때론 탄자니아 친구들이 음부아(mvua,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방과 후면 어김없이 움중구(mzungu, 백인을 의미하지만 대부분 외국인을 부를때 사용함)를 외치며 다가오는 아이들과 금새 친해질 수 있었고, 같이 코코넛과 바나나를 따먹고 코코넛으로 만든 공으로 축구를 하며 라피키(rafiki,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티없이 순수한 이들은 탄자니아에서도 나름 중산층 이상(기숙 중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에 속하지만, 변변한 운동화 하나 없이 맨발로 대자연을 누리고 다닙니다. 하루는 다니엘(p7 사진에서 오른쪽 두 번째)이 말라리아에 걸려 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하는 제게, 되려 한국에는 에이즈(HIV/AIDS) 환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에 놀라며 마치 한국이 천국인 마냥 부러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친구들을 보니 하루 빨리 탄자니아 땅에도 가난과 질병과 부패가 사라지길 간절히 염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늘도 땅도 드넓은 아프리카, 모든 것이 엄청나게 큰 탄자니아 땅을 저 혼자 힘으로는 가난도 질병도 부패도 해결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 한두 명이라도 현지인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웃고 울며 땀 흘리며 라피키(친구)가 되어 줄 수 있다면 앞으로의 1년 동안 있는 힘껏 두 팔 벌려 한아름 탄자니아를 안아보려고 합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