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빙프렌즈 공식 블로그

항레트로바이러스제를 말하다 본문

MDGs_새천년개발목표/Disease_질병

항레트로바이러스제를 말하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7. 22. 10:00

잘 모르는 것이 가장 무섭듯, HIV/AIDS는 여전히 그 치료법이 나와 있지 않다는 데서 참 무서운 질병으로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치료는 할 수 없지만 HIV/AIDS의 진행을 저지하고 수명을 늘려주는 고마운 약은 있는데요. 이를 사용하는 방법을 흔히 항레트로바이러스제 요법(Antiretroviral therapy, 이하 ART)이라고 부릅니다.

인도 정부에서 나눠준 ART의 한 종류

HIV가 몸에 들어오고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 인체에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납니다. (HIV는 어떻게 인체에 들어오나? 글을 참고해 주세요.) 우선 HIV는 면역 체계의 수뇌부와 같은 CD4 림프구를 공격합니다. 그래서 HIV를 복제할 'HIV공장'을 만듭니다. HIV는 RNA를 갖고 있을 뿐 DNA를 갖고 있지 못해 자가 복제를 하지 못하는데, CD4 림프구 안에 있는 DNA를 잘라내고 자신의 RNA를 집어넣어 세포를 찍어내야 할 CD4가 정상적인 세포 대신 HIV를 찍어내는 '공장'이 되게 만듭니다. 이 과정이 계속해서 반복되다 보면 CD4 림프구는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고 HIV만 뽑아내는 역할을 하다가 결국 죽고 말아요.

HIV의 구조


 항레트로바이러스제는 몸에 들어와서 바로 이 과정을 저지해 줍니다. HIV가 DNA를 훔쳐가 복제하지 못하도록, HIV 공장을 만들지 못하도록, HIV가 세포에 침투해 세포를 죽이지 못하도록 보호막이 되어 주는 거예요. 그래서 진행이 더뎌지고, 영양 보충이 잘 되는 경우에는 상당히 긴 기간 정상적인 삶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항레트로바이러스제 덕분에 HIV/AIDS는 이제 당뇨나 마찬가지다, 지속적 관리가 필요하지만 잘 해준다면 죽음으로 직결되지 않는 병이다, 라는 장밋빛 미래가 펼쳐진 것 같아 보였죠.

하지만 언제나 현실은 잔혹하지요. 만약 우리가 모두 집에 돈을 쌓아 놓고 살아서 딱히 노동하지 않아도 된다면, 매일매일 집에서 편하게 앉아 주사를 맞고 약을 먹으며 건강 관리를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우리의 이웃들에게는 하루 벌어 먹고 살기도 힘든 현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당장 다음 끼니에 먹을 쌀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예요.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세계 최대의 HIV/AIDS 창궐 지역인 아프리카나 인도의 경우 대개 그렇습니다. ART를 처방받고 영양 보충을 하기 이전에, 이들에게는 자기가 PLWA인지 아닌지 확인하러 병원에 갈 만한 경제적, 시간적 여유도 그래야 된다는 관념도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냥 매일 힘이 없고 자주 아프고, 너무 아파서 누워만 있게 되어 병원에 갔더니 AIDS가 진행될 대로 된 상태더라' 하는 이야기를 숱하게 듣습니다. 그렇게 떠나보낸 아빠,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도요.

인도의 한 공립 병원. ART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인도 정부의 경우, 정부 설립 병원에서 등록된 HIV/AIDS 환자들에게 ART 의약품을 무료로 나누어 줍니다. 참 좋은 일이죠. 그러면 인도의 모든, 아니면 대다수의 HIV/AIDS 환자들은 그 특혜를 누리며 잘 지내고 있을까요? 불행히도 그렇지는 못합니다. 보통 정부 설립 병원에서 먼 외곽 지역에서 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한번 발걸음하기도 굉장히 어렵고, 그렇게 해서 약을 꼭 받아야 한다는 것과 꼭 먹어야 한다는 것을 잘 지키지 못해요. 특히 ART는 한번 시작하면 매일 정확한 시간에 복용해야 하며 죽을 때까지 그 복용을 멈추면 안 된다는 엄청난 특징이 있거든요. 복용을 멈추는 순간 HIV는 더 강하게 인체를 옥죄어 옵니다. 이럴 경우 사용했던 약을 다시 사용할 수 없어요. 또 약의 부작용도 상당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조합을 잘 찾아 써야 해요. 4가지 라인밖에 없어서, 그 안에서 좋은 조합을 찾아 그 조합을 계속 잘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실제 한 환자의 CD4 수치 변화
 파견 단원으로서 현지인 직원들과 함께 저도 가정 방문하고 환자들을 만날 때마다 ART가 아주 중요하다는 것과 올바르게 복용할 것을 강력하게 이야기하지만, 충분한 영양 공급조차도 되지 않는 사람들은 약을 먹든 먹지 않든 힘없이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기는 마찬가지라고 느끼기 때문에, 돈과 시간을 들여 병원에 가고 정성을 들여 약을 챙기고 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아요. 깊은 절망 가운데 있어 그런지 의료적 도움보다는 그냥 살아온 대로 살려고 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심각한 경우에는 면역 능력이 없어서 결핵이 발병해 병원에 입원했는데 칼을 들고 집에 데려다 달라, 치료받지 않겠다, 하고 의료진을 협박해 어려움을 겪은 일도 며칠 전에 있었어요.

부모님이 챙겨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꼬박꼬박 약을 챙긴다는 것이 사실상 어려운 어린아이들의 경우에도 염려가 많습니다. 계속해서 조합을 바꾸다 보면 언젠가는 사용할 수 있는 조합이 없어지고, 그 때는 속수무책으로 HIV가 몸 안에서 활개를 치는 걸 볼 수밖에 없는 날이 올 수도 있으니까요. 심지어 조합을 바꿔 받을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절대 다수라고 말하기는 너무 슬프지만, 인도의 경우 상당수의 의사들이 환자를 일일이 보며 조합을 바꿔주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큼직하게 두 가지입니다. 단기적으로 계속해서 HIV/AIDS와 ART에 대한 교육을 하고 여러 생활 지침을 잘 따를 수 있도록 돕는 것, 장기적으로는... 세상 어느 누군가 HIV를 완전히 인체에서 밀어낼 수 있는 치료법을 짠 개발한다면 참 좋겠죠? 아직은 요원한 꿈이지만, 세상 어딘가에서 부작용, 재사용이 불가능한 점, 복용을 멈출 수 없는 점 등 항레트로바이러스제의 단점들을 보완할 수 있는 멋진 신약이 등장하길 기대해 봅니다.


Comments